스테이블코인은 왜 미국 단기국채를 보유할까?|디지털 달러와 달러 패권의 미래

스테이블코인은 발행량만큼 현금과 미국 단기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합니다. 장기국채보다 단기국채를 사용하는 이유는 금리 변동에 따른 가격위험이 작고, 대규모 환매에도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해 국채 수요를 확대하고 달러 패권을 디지털 금융시장으로 연장하려 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왜 미국 단기국채를 보유할까?

지난 글에서는 미국의 국가부채가 계속 증가해도 달러가 쉽게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미국이 왜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있으며, 발행사들이 준비자산으로 장기국채가 아닌 미국 단기국채를 보유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어떻게 1달러를 유지할까?

USDT, USDC, RLUSD와 같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한 개의 가치를 1달러에 가깝게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자산입니다.

기본적인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용자가 발행사에 1달러를 맡기면 스테이블코인 한 개가 발행됩니다. 반대로 사용자가 코인을 반환하면 발행사는 1달러를 돌려줍니다.

발행사가 코인 발행량만큼 안전한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사용자가 언제든 1달러로 환매할 수 있다고 믿어야 이 구조가 유지됩니다.

미국의 GENIUS Act는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최소 1대1 준비자산을 요구하며, 허용 자산에는 현금과 예금, 일부 환매조건부거래, 단기 미국 국채 등이 포함됩니다. 

스테이블코인의 1달러 페깅(Pegging)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서류상 준비금 보유를 넘어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투명성과 유동성 검증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주요 발행사들은 독립된 외부 회계법인을 통해 매월 준비자산 실사 보고서(Attestation Report)를 발간합니다. 예를 들어 테더(Tether)나 서클(Circle) 같은 발행사들은 보유 준비금 중 현금 예금, 환매조건부채권(Repo), 그리고 만기 90일 이내의 미국 단기국채 비중을 세부적으로 공개합니다. 이처럼 철저한 준비금 공개와 규제 준수는 시장에 부정적인 소문이나 자금 이탈 우려가 발생했을 때 급격한 뱅크런(대량 환매 요청)으로 인한 디페깅 위험을 차단하는 핵심 안전장치 역할을 합니다.

왜 장기국채가 아니라 단기국채일까?

스테이블코인은 사용자가 원할 때 바로 달러로 바꿔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준비자산에는 높은 수익률보다 다음 조건이 중요합니다.

  • 가격 변동이 작을 것
  • 현금화가 빠를 것
  • 신용위험이 낮을 것
  • 만기가 짧을 것

10년 또는 30년 만기 장기국채는 금리가 오르면 가격이 크게 떨어질 수 있습니다.

환매 요청이 몰렸을 때 장기국채를 손실을 보고 매각하면 준비금이 부족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반면 단기국채는 만기가 짧아 원금 회수가 빠르고, 금리 변화에 따른 가격 변동도 상대적으로 작습니다. 연준 역시 지급결제용 스테이블코인의 준비자산으로 예금과 단기 미국 국채처럼 신용위험과 가격변동 위험이 낮은 자산이 적합하다고 설명합니다. 

금리 변동성에 따른 듀레이션(Duration) 리스크는 금융기관의 존립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2023년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SVB는 저금리 시기에 유입된 거액의 예금을 10년 이상 만기의 장기 미국 국채와 주택담보증권(MBS)에 집중 투자했습니다.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자 장기채권의 평가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었고, 예금주들의 출금 요청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을 손실 매각하면서 결국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만기 1~3개월 수준의 미국 단기국채(T-Bills)를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기국채는 금리가 변동하더라도 가격 하락 폭이 미미하며, 짧은 주기로 만기가 돌아와 언제든 원금을 현금화하여 대규모 환매 요청에 즉각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국채의 새로운 매수자가 될까?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성장하면 발행사는 더 많은 준비자산을 확보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스테이블코인이 100억 달러 더 발행되고, 그 준비금 상당 부분이 단기국채에 투자된다면 미국 국채에 새로운 수요가 생깁니다.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 세계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합니다.

발행사는 달러를 받습니다.

받은 달러로 미국 단기국채를 매입합니다.

미국 정부는 국채의 새로운 매수자를 확보합니다.

미국 재무부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를 인터넷 기반 결제수단으로 확대하고, 미국 국채 수요를 증가시키며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현재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보유한 미국 단기국채의 총 규모는 이미 주요 선진국의 국채 보유량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주요 발행사들의 단기국채 보유액을 합치면 세계 주요 국가들의 미국 국채 보유 순위 15위권 내외에 해당할 만큼 거대한 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는 미 재무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외국 중앙은행이나 대형 연기금, 뱅크오브아메리카나 지피모건 같은 전통 상업은행들이 주요 매수자였으나, 이제는 디지털 자산 시장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새로운 국채 매수 주체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 국채 발행 부담을 덜고 재정 적자를 메우는 데 든든한 뒷받침이 됩니다.

미국이 암호화폐 시장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이유

미국 입장에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가 아닙니다.

첫째, 달러를 블록체인 위에서 24시간 이동시키는 디지털 결제수단이 됩니다.

둘째, 달러를 직접 구하기 어려운 국가에서도 스마트폰과 디지털 지갑을 통해 달러 기반 자산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셋째, 스테이블코인이 성장할수록 미국 단기국채를 보유하는 발행사도 늘어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석유 거래가 달러 수요를 만들었다면, 앞으로는 스테이블코인, 국제송금, 암호화폐 거래와 RWA 시장이 새로운 달러 수요를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스테이블코인이 미국 국가부채를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존 은행예금이나 머니마켓펀드에서 자금이 이동한 것이라면, 금융시장 전체에서 완전히 새로운 돈이 생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연준도 스테이블코인이 예금을 단순히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동시키거나 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서 달러의 영향력은 블록체인 기반의 실물자산 토큰화(RWA) 및 탈중앙화 금융(DeFi)과의 결합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남미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처럼 자국 화폐 가치가 불안정한 초인플레이션 국가의 국민들은 국경을 초과하여 디지털 지갑 하나만으로 안전자산인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상거래에 활용합니다. 다만 연준과 금융 당국이 주시하는 부작용도 명확합니다. 기존 상업은행 예금이 대거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할 경우, 전통 은행들의 신용 창출 기능이 약화되고 금융 시스템 전체의 유동성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법적 규제 테두리 안에서 투자자를 보호하면서도 달러의 디지털 국채 매수 기반을 최대화하는 정교한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결론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언제든 상환할 수 있는 안전하고 유동적인 준비자산이 필요합니다.

장기국채보다 단기국채를 사용하는 이유는 가격 변동이 작고, 환매 요청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동시에, 달러 사용 범위를 디지털 금융시장으로 넓히고 미국 국채의 새로운 수요 기반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과거 페트로달러가 석유와 달러를 연결했다면, 미래에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금융시장과 달러를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음 편 예고

다음 편에서는 독일 하이퍼인플레이션 당시 빵 한 개 가격이 수십억·수조 마르크까지 치솟은 이유와, 현금 보유자는 몰락했지만 빚을 내 부동산과 기업을 산 사람들은 왜 유리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 화폐가치는 왜 순식간에 붕괴했을까?
  • 빚의 실질가치는 어떻게 사라졌을까?
  •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부동산과 실물자산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